39. 눈 속에 버려진 아이를 개가 품어 살리다
충청북도 청원군 이언면 동리(忠淸北道 淸原郡 伊彦面 洞里)에 이도성(李道成, 당시 41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외아들이었으나 늦게까지 자식이 없어 본처 이성녀를 두고, 다시 젊은 부인을 작은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뜻밖에도 첩을 두자 본처가 아들을 낳았고, 작은 부인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작은 부인은 시기심과 질투가 심하여 항상 본처가 낳은 어린 아이를 곱게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편이 점차 본처를 가까이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심술이 생겨 무언가 일을 저지르리라 생각하였다.
어느 겨울, 1935년 12월 26일 눈이 내리는 삼동(三冬) 날, 동네 어느 부인의 회갑 잔치가 있었다.
낮에는 남자 손님을 청해 잔치를 벌이고, 밤에는 동리 여자 손님을 초대하여 즐겁게 놀자고 하였다.
이때 이도성의 본처 이성녀도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여 재워두고 회갑 잔치에 갔다가 곧 돌아오겠다고 하였으나, 흥겨운 분위기에 노는 바람에 어느새 새벽이 되도록 놀았다.
날이 샐 무렵 집에 돌아와 보니, 방에 눕혀 두었던 어린 아이가 포대기에 쌓인 채로 사라져 있었다.
밤새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범이라도 왔던가?’ 하며 온 집안을 찾아보았으나 아이는 없었다.
집안은 야단법석이 났고, 울어도 불러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아 큰일이 났다.
그러는 사이에 먼동이 터 날이 밝아가는데, 집에서 기르던 개가 등에 눈을 뒤집어쓴 채 밖에서 들어와 본처 이성녀의 치마자락을 물어당기며 나가자는 시늉을 하였다.
‘이놈의 개야, 개조차 야단을 치네’ 하며 떨쳐버리자 개는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치마자락을 물어당겼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따라나서니 개는 털레털레 앞서 가다가 돌아보며 어서 오라는 표정을 지으며 동리 뒷산으로 계속 갔다.
땅을 내려다보니 개가 다닌 길이 눈 위에 뚜렷하게 나 있었다.
‘무슨 까닭이 있구나’ 하고 개가 가는 대로 따라가 보니, 산골짝 포도솔 사이에 포대기에 쌓인 채 어린 아이가 있었고, 눈은 말똥말똥 살아 있었다.
개는 밤새 따뜻하게 품고 있다가 집에 와서도 아이 어머니 이성녀가 없으니 매양 쫓아가 품어주었고, 이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에 또 기별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무사히 찾았으나, 이 일을 저지른 장본인은 작은 부인의 질투에서 비롯된 잔악무도한 죄악이었다.
결국 그 작은 부인은 살인미수죄로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잠깐의 잘못된 생각이 일생을 망치는 과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한 개 같은 짐승도 밥 먹여 길러준 은혜를 이렇게 갚아준 것이다.
옛날 경주에 최진사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산에 누웠을 때 산불이 나서 타죽게 되었으나, 개가 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서 최진사를 살려놓고 자신은 꼬리에 불이 붙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개는 꼬리가 다 타서 떨어져 죽었는데, 함께 먹이던 암개가 그때 새끼를 가졌고, 새끼들은 모두 꼬리가 없었다고 한다.
이 개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인 경주 동경이(銅鏡犬)이다.
또한 전라도 오수(五水)에서도 주인이 술에 취해 길가에서 잠들어 있을 때 산불이 나서 타죽게 되었으나, 사랑하던 개가 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서 주인을 구해내고, 개는 기진맥진하여 죽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오수(獒獸)’라는 지명까지 생겼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각처에 전해진다.
까마귀도 반포(反哺)의 은혜를 갚는다고 하였는데, 사람은 어떠한가? 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앞길에 설움이 닥치는 법이다.
이 글은 1936년 병자년 2월 24일 동아일보에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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